저 아래에 있는 가이 리치판 홈즈 감상에게는 미안하게도
BBC 셜록은 진리로다.
감상을 솔직하게 토로하라고 하면 ㅋ 로만 243만자 정도는 충분히 채우겠음. 대체 영국인들은 무얼 먹고 이런 드라마를 생각하고 연기하고 연출하고 제작한단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전세계인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규명해야 할 문제이며 문화 식민주의를 방지하기 위한 현실적 대책이라 사료된다. 아니, 난 지금 진심이라고.
발단은 대충 상상이 된다.
M1: 헐. 헐리우드 애들이 홈즈 만드네.
M2: 감독은 가이 리치임.
M1: 헐. 홈즈가 로다주.
M2: 왓슨은 주드로임.
M1: 뭔가 블록버스터 액션물로 만드는 듯함.
M2: 미드 하우스도 있는데 뭘.
M1: 이럴 바엔 현대판 홈즈 걍 우리가 만들까?
M2: ㅇㅋ
그리하여(?) 탄생한 BBC 셜록은 무대를 현대로 옮겼음에도 원작을 아주 싱싱하게 살려놓았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는 것이 표현의 더할나위없는 모범이라고나 할까. 인물의 재해석과 동시대성의 구현, 원 텍스트 행간 읽기 이 모두를 어찌나 탁월하게 성취해 놨는지, 볼 때마다 질리기는커녕 새로운 면모를 계속 발견하게 된다. 정말 물건이다. 2화는 다소 평범했지만 1, 3화가 워낙 뛰어나서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 그러고 보니 2화에는 코멘터리도 없던데 대체 이 에피소드의 정체는 뭐지...
여하간 드라마를 성공시킨 공로는 뭐니뭐니해도 M 형제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떼어놓고 봐도 치밀한 추리 드라마이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셜로키언/홈지안을 감동시킨 대본을 써냈으니; 팬이라고 자처하기에는 뭣하지만 시리즈를 독파한 바 있는 내가 봐도 요소요소를 잘도 녹아냈더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끌어온 도입부에서는 과연~ 하는 정도였는데 채찍을 이용한 시체 연타 40발(숫자의 정확성에는 의문을 갖지 마시오)부터 방바닥을 구르기 시작. <주홍색 연구>에 나오는 '멍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알아보려고 막대기로 동물 시체를 두드린다'는 지나가는 설명을 이토록 과격하게(또는 현대 사회에 걸맞게) 시각화하다니! 그 후부터 원작의 사건과 대사와 인물들이 어찌나 절묘하게 변용되고 배치되는지 쏟아지는 재미의 홍수에 휩쓸려 아니 갈 수가 없었음.
무엇보다 성공적이었던 것은 캐릭터의 재창조라고 할까. 물론 별개로 취급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대본이 좋았어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인 홈즈와 최고의 버디 왓슨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면 폭풍 같은 비난이 밀려들고 BBC가 무너지고 모팻이 그리스로 달아나고....(응?) 여하간 셜록은 그 간의 주된 이미지보다 좀더 어리고 반사회적인 성격으로 괴팍한 천재의 캐릭터가 강해져서 자연스레 존에게 정신적/사회적으로 의지하는 구조가 됨. 반면 존의 경우 용감하고 충직한 본성뿐만 아니라 사실은 걸어다니는 전쟁터 셜록에게서 군 복무 당시의 흥분과 고취감을 느낀다는 설정을 부여해서 결국 두 사람은 재차 찰떡 콤비가... 그 외 레스트레이드가 포용력과 리더쉽을 갖춘 경감이라는 점도, 마이크로프트가 비뚤어진 브라더 콤플렉스의 소유자라는 점도 인물과 인물 간 구조에 생기를 솔솔 불어넣고 있다.
영상은 굉장히 세련되었음. 카메라 워킹도, 구도도, 색감도 웬만한 영화 뺨칠 정도로 감각적이어서 아무렇게나 화면을 캡처해도 그림이 나온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살아 있는 런던 네비게이션 셜록이 머릿 속으로(아니 사실 입으로 ㅋㅋ) 런던 지리를 그리면서 달려나갈 때의 편집 화면. 거리 컷과 질주 씬이 교차되는데 셜록의 활발한 뇌와 다리 양쪽 모두를 보여줘서 신나더라. 음악의 경우 풍부하다기보다 몇몇 모티프를 다양하게 변주해서 사용. 발랄경쾌한 것이 이웃집 탐정 이야기에 썩 잘 어울린다.
끝으로 배우 이야기. 셜록 역의 베네딕은 프로모 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엄청난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던데 막상 뚜껑이 열리자 모두 찬사로 바뀌었다는 전설이... 암튼 외모도 목소리도 연기도 정말 흠잡을 데 없기는 했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워낙 목소리에 약하다 보니까 첫 마디 'How fresh?'에서 격침; 알고보니 우연히 TV에서 봤던 <호킹>이 베네딕이었던데 그때도 목소리에 이끌려 드라마를 완주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마틴 프리만의 왓슨도 최고! 대체 어떻게 이렇게 평범하고도 귀엽고도 남자다운 배우를 데려다가 왓슨을 만들어 놓았을까. 히치하이커의 아서도 그랬듯이 런던 아무 거리나 거닐다가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영국 아저씨의 전형이면서도 왓슨임. 원래 왓슨이 그런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그나저나 이완도 그렇고 마틴도 그렇고 저 나이가 되도록 소년다운 깜찍함을 간직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 진심 궁금하다.
BBC가 단 3부작만 만들어서 피눈물을 흘린 한 사람으로서 내년에 만들어질 새 3부작도 기대기대. 1년은 길지만 DVD를 돌려보며 다른 영국드라마라도 섭렵하고 있으면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가겠지. 일단은 영국 아마존의 배송이 한시빨리 이루어지기만을 목 빼고 기다려본다.